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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가 묻는 인간 존재의 의미
오렌지
@EnuPang7
    웹소설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를 처음 읽었을 때, 평소 ‘사이다’,‘복수’를 키워드로 하는 소설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처음으로 답답함을 느꼈다. 작중에서 나타나는 주인공 ‘박무현’의 선택은 너무나 우직했으며 때로는 바보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소설을 완독한 이후에도 그 '답답함'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해당 소설은 단순한 도덕적 의무를 넘어, 극한의 어둠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서로에게 등불이 되어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작은 빛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를 묻고 있었다.
 
1. 미약함에서 시작되는 빛
    소설 속 선한 행위는 거창한 영웅의 서사나 위대한 희생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극한의 테러 상황 속에서 ‘나는 살고싶다.’라는 절박함과‘너도 살아도 된다.’라는 작은 인정에서 비롯된다.‘박무현’을 비롯하여 몇몇 등장 인물들은 자신의 안위를 버리고 타인의 손을 잡는다. 그 순간은 마치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꺼지고 말 미약한 불빛처럼 보일지라도, 그 미약한 빛이 다른 이들을 살리고 결국 모두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인물들의 행위는 결과나 보람의 크기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넘어선 그 행위 자체의 순수성과 시작의 용기에 있다.
 
    해당 작품은 단순히 선(善)과 악(惡)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고자 하는 대립을 넘어서 인간의 아주 오래된 본질을 다룬다. ‘왜 우리는 선하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다. 작중 인물들은 생존을 위해 각자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다가도 위기의 순간 타인을 위한 선택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러한 행위들은 단순히 도덕적 의무를 뛰어넘으며 개인주의와 불신으로 붕괴된 공동체를 재건하는 과정이 된다. 선한 행위는 때로 독자들로 하여금 답답함을 유발하며, ‘사이다’, ‘복수’, ‘참교육’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종종 바보 취급을 당하곤 한다. 그러나 선한 선택으로부터 비롯된 가치는 해저기지의 테러로 인해 발생한 상처와 고립으로부터 서로 연결하고, 함께 하고자 하는 굳건한 선언과 같다. 작은 선의는 신뢰가 되며, 신뢰가 공동체를 지탱하는 기반이 된다. 이 작품은 궁극적으로 인간 사회를 ‘인간 답게’ 만드는 본질적인 힘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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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구가 아닌 존재의 증명으로서
    직접적인 보상이 없더라도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함께하려는 작은 행동은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는 출발점이 된다.¹⁾ 해당 소설에서는 선한 행위가 반드시 이로운 결과가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 것이 때로는 고통을 낳기도 하며 오히려 최악의 결말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는 작중의 인물 중 박무현을 제외한 ‘신해량’, ‘백애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문득 철학자 칸트가 떠올랐다. 그는 어떤 보상이나 목적 없이 그 자체로 옳기 때문에 해야만 하는 도덕적 법칙, 즉 '정언명령'을 이야기 한다. 소설 속 인물들의 선한 행위는 바로 그 정언명령을 따르는 것처럼 보였다. 때로는 그 선택이 더 큰 고통을 불러오고, 결과가 허무해 보일지라도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그 이유를 그들에게 선한 행위가 더 이상 타인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마지막 힘이었기 때문이라 해석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선한 행위는 내면의 양심과 인간으로서의 의무감에 따라 이루어진다. 이는 고통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기 존재의 증명을 내포한고 볼 수 있다. 진정한 선한 행위는 외부의 보상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도덕적 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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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을 완독하며 느낀 강조점은 선한 행위가 개인의 도덕적 성취를 위한 것이 아니며 공동체를 지탱하고 인간 사회를 인간답게 만드는 근원적인 힘이라는 것이다. 선한 행위는 관계의 회복이자 고립된 심해를 이해하는 연결점으로서, 서로를 묶고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작동한다. 개인주의가 심해지고 각자도생의 논리가 판치는 오늘날처럼 선행은 그 자체로도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중요한 불빛이 된다.
 
    해당 소설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심해 속에서 누군가의 등불이 될 수 있는가?" 현실의 바다는 소설처럼 극단적인 테러 상황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크고 작은 심해를 마주한다. 무관심이 만들어낸 고립, 불신의 파도 속에서 우리는 헤엄쳐야만 한다.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는 그러한 사실을 몇 번이고 반복되는 ‘박무현’의 시간을 통해 알려준다. 그러므로 이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교과서적인 도덕 교훈이 아니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실질적인 제안일 수 있다.
 
    선한 행위란 미래를 위한 투자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된다. 웹소설『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작품 속 인물들의 내외적 행위와 장치를 통해 설득력 있게 풀어간다. 선한 행위가 어둠을 밀어내는 거대한 태양이 아닐지라도 누군가의 생명을 지켜주는 유일한 등불이 될 수 있도록, 그 작은 빛들이 모이고 이어질 때 비로소 세상은 다시 길을 찾게 될 것이라 희망하며 글을 마친다.

1) 사회학자, Douglas Rushkoff의 말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