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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구원의 사회학적 이해
- 무한교 구원관과 박무현의 구원적 실천을 중심으로 -
익명A
     무한교는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이하 어바등) 작품의 비밀 단체로 전개와 함께 정체가 조금씩 밝혀진다. 북태평양 해저 기지 테러 이전에는 환경 보호를 위주로 홍보하며 실체를 감추고, 신도에게 물질적 지원을 하는 등의 활동으로 규모를 키웠다. 무한교 신자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구원이라 여기고 구원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보석과 테러를 준비했다. 이 글은 무한교 구원관의 비판을 통해 과거 회귀적 구원의 한계를 규명하고, 대조적으로 어바등이 보여준 구원의 방식을 관찰하여 현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구원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먼저 무한교가 사이비인지 알아보려면 크게 법·제도 중심과 윤리·사회적 기능 중심으로 접근할 수 있다.¹⁾ 해저기지 테러는 집단 학살죄의 구성 요건을 충족하여 국제 형사 재판소 ICC²⁾가 개입할 여지가 있다. 이는 법·제도적 관점에서 무한교의 행위를 명백히 범죄로 규정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무한교가 종교의 형식을 가지고 있는 만큼, 법·제도의 관할만으로는 그들의 종교적 성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애초에 종교와 사이비의 경계 자체가 명확하지 않다. 종교의 기원과 정의는 명백하지 않아서 종교의 본질과 필수 조건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교조·교리·교단은 종교 제도화의 핵심 요소이지만 신흥 종교나 토속 종교, 무속 신앙 등이 일부 요소를 갖추지 못한다고 해서 종교가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이렇듯 종교의 경계가 합의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이비 또한 종교의 여집합으로 치부할 수 없다. 따라서 무한교를 단순히 종교 혹은 사이비로 분류하기보다는, 신도들이 공유하는 신념의 내용과 그것이 공동체 안팎에서 발휘하는 사회적 기능을 살펴봄으로써 성찰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다.
 
     ‘개인이 특정 과거 시점으로 돌아가는’ 방식의 구원은 현재 상실한 과거의 상태를 회복하고 내적 보상을 얻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현대 사회는 세속화, 개인화, 탈제도화가 두드러지면서 구원이 점차 내면 치유, 심리적 회복, 자기 실현의 의미로 전환되는 경향을 보인다. 전통적 구원관이 제도· 교리의 틀 안에서 주로 내세적인 구원을 규정한 것과 달리 무한교는 현세에서 개인의 내적 욕구를 중시하는 점에서 현대적 구원관으로 분류된다. 현대의 구원관은 개인화와 세속화라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며, 종교사회학은 구원을 개인 심리와 사회구조의 상호작용 속에서 분석한다. 따라서 종교사회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무한교의 현세적 내적 욕구 중심의 구원관을 분석한다.
     에밀 뒤르켐에 따르면, 종교적 의례는 성스러운 것을 매개로 공동체의 집합적 정체성과 연대를 강화한다.³⁾  개인은 사적 욕망을 넘어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가치와 신성 경험에 참여한다. 그러나 무한교의 과거 회귀를 위한 의례는 개별적 보상에 초점을 맞춘다. 신도들은 집합적 경험보다 각자의 잃어버린 과거라는 사적 목표를 추구하며, 종교적 실천을 세속적 거래로 변질시킨다. 이 교환 논리는 종교 공동체를 일종의 서비스 제공 기관으로 전락시킨다. 신도들은 같은 상품을 추구하는 고객들로 관계가 재편되며, 개별 이해관계로 결속한 폐쇄적 집단이 형성돼 신도들이 사적 의식에 매몰된다. 종교는 단순히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계적 의례에서 벗어나, 삶 전체를 아우르는 보편적 가치와 규범을 제시하는 단계로 근대화되어왔다.⁴⁾ 그러나 무한교는 이러한 합리화의 방향을 역행해, 구원을 단순한 기술적 해결책으로 축소한다. 보상으로의 환원은 지속 가능한 구원이 될 수 없다.
     결국 무한교의 의례는 성스러움의 사회적 기능을 훼손하고, 종교의 합리화를 거부한 형태다. 그 결과 종교가 가져야 하는 본래의 사회 통합적 기능과 의미 체계적 깊이가 약화되며, 무한교는 종교적 공동체보다 폐쇄적 욕망 충족의 장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상황은 현대 사회의 개인주의와도 연결되어 있다. 개인의 욕망을 초월·승화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이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한다. ‘과거 회귀’라는 구원관은 개인의 심리적 결핍을 사회적 맥락에서 성찰하기보다는 집단적 책임이나 윤리적 지향, 성찰 없이 즉각적으로 해소하려는 현대적 소비주의 성격과 맞닿아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구원의 지향점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무한교의 문제적 구원관에 대한 대안은 무엇일까? 이를 위해 현세적 구원의 다른 가능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종교사회학자 시마조노 스스무는 구원을 ‘현세의 결핍을 극복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⁵⁾ 이는 초월적 세계나 내세의 완결을 지향하기보다, 지금 마주하는 상실과 고통을 다루는 관점이다.
박무현의 행적은 이러한 정의와 맞닿아 있다. 과거를 되돌리거나 초월적 개입을 통한 즉각적 해결을 바라는 대신, 현재의 일상 유지와 회복에 무게중심을 둔다. 그의 삶을 궤도에서 이탈시킨 사건들―교통사고, 아버지의 사이비 종교 가입과 실종―이 남긴 장애, 트라우마, 후회를 부정하지 않되, 그것을 되돌리려는 시도나 보복의 상상에 매달리지 않는다. 루프의 존재를 알게 된 후에도 ‘이번 회차를 포기하고 다음에 더 나은 10시간을 살자’는 유혹을 경계하고 매 회차에 최선을 택한다. 김재희의 ‘죽음으로 루프를 재시작하라’, ‘다음 루프에 도움이 될만한 인물의 탈출을 일부러 막으라’라는 유혹에도 박무현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런 매 순간의 최선이 누적되었기에 다른 구원자 후보들은 루프 탈출 시점을 고를 수 없었지만 박무현은 모든 루프의 결과를 얻어 많은 사람을 구했다.
     한편, 루프를 경험한 무한교의 일원들, 특히 김재희의 영화관 루프 경험과 상처를 대하는 방식에서도 그의 일관된 철학이 드러난다. 과거를 단편적으로 소급해 수정하려는 대신 비극을 직시하고 자책과 원망에서 벗어나 매일 자신을 돌보고 식물과 주변 관계를 돌보며 일상에 최선을 다하라고 말한다. 이는 시마조노가 말한 ‘현세 결핍 극복’의 첫 번째 단계이다. 무한교의 ‘과거 회귀’와 대조적으로 개인의 상실과 고통을 부인하거나 되돌리려 하지 않고 현재의 맥락에서 수용·극복해 나가는 과정이다.
박무현은 개인적인 치유를 넘어 공동체적 실천으로 확장한다. 1회차의 백호동 숙소에서 다른 이들을 깨우는 이타성을 보이며, 재난 상황에서 집단적 생존 전략을 일관되게 실천한다. 동물, 어린이, 노약자, 부상자, 여성 등 상대적으로 탈출에 어려움을 겪을 이들을 먼저 배려한다.
     또한 비폭력을 원칙으로 보복의 악순환을 차단한다. 6회차 백애영과의 중앙동 엘리베이터에서 손가락을 잃는 사고에도 즉각적인 폭력으로 응수하지 않았다. 재난 상황에서 다양한 무력 수단을 활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비폭력으로 대응한다. 빠르고 간단하게 폭력이 해결해주는 통쾌함을 부정함으로써 단기적으로 개인적 비용을 지불하지만 장기적으로 갈등 증폭을 막고 집단 규범의 내재화를 이끌어 낸다.
비폭력과 함께 선제적 양보 또한 중요한 가치이다. 주작동 엘리베이터에서 일행을 받아들이고, 현무동 탈출정을 당연하게 나누는 선택은 이지현, 타마키의 결정을 변화시킨다. 무한교의 거래적 관계와 달리 박무현은 즉각적인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 일방적 선행으로 상호부조의 연쇄를 만든다.
     동시에 포용을 택해, 사람을 일시적 악행으로 평가하거나 낙오시키지 않는다. 2회차 이지현과의 주작동 엘리베이터에서 배낭을 뺏고 고양이를 해치고 탈출 과정에 비협조적이었던 사람들도 즉시 배제하지 않는다. 사람을 단일 행위로 낙인찍지 않고 만회의 기회를 열어둔다. 이런 포용성은 전염되어 공동체 내부의 결함을 상호 보완하게 하며 상호작용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와 ‘나’의 결함 또한 공동체 내에서 포용받게 된다.
     무한교의 비밀주의가 정보를 독점하고 배타적 결속을 강화하는 것과 반대로 박무현은 위험을 무릅쓰고 정보를 공개하여 공론장을 회복한다. 이는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사회에 제공해 상호 신뢰를 회복시킨다. 이러한 작용으로 3회차 주작동 숙소에 갇혀 있던 김가영을 연구원들이 구출하도록 하고, 6회차 대한도 체육관의 인질과 제1 해저기지의 무한교 신도들의 깨달음을 이끌어냈다. 악의가 연쇄적인 복수와 증오를 낳는 것처럼, 선의 역시 양심을 일깨우고 외면했던 사실을 직시하게 하거나 용기를 내도록 돕는 연쇄 작용을 보여준다.
     개인에서 공동체·사회적으로 확장되는 차원은 독립적이지 않고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개인적 차원에서 과거에 매몰되지 않는 태도는 공동체적 포용의 기반이 되고, 사회 전체의 신뢰와 연대를 회복하는 사회적 구원의 토대가 된다. 시마조노의 ‘현세 결핍 극복’의 정의는 이렇게 확장되는 구원의 과정을 포괄한다. 박무현의 현재적 실천으로 결핍을 메워나가는 방식은 개인과 사회를 동시에 치유한다.
이런 실천적 구원관의 핵심은 어떤 특정 종교 제도나 교리에 의존하지 않고 일상적 실천이 연쇄적으로 작용하여 개인과 공동체의 결핍을 극복해나가는 현세적 접근에 있다. 현재의 삶에서 스스로의 결핍을 극복하고, 공동체적 가치를 실천하며, 타인의 선의에 응답할 수 있는 양심적 태도다.
 
     무한교의 과거 회귀적 구원관이 개인의 욕망을 직관적으로 해소하려 했으나, 근원적 해결에 실패하고 집착적 변모를 통해 진정한 구원을 이끌어낼 수 없음을 알았다. 반면 박무현이 보여준 현세적 구원 실천은 개인으로부터 시작된 이타적 선택이 연쇄적 연대로 확산되어 더 많은 이들을 삶의 뭍으로 이끌어내는 대안적 가능성을 제시했다. 현대인의 존재론적 불안은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이며, 전통적 해결책만으로는 해소될 수 없다. 복잡하고 유기적으로 얽힌 현대 공동체에서 개인의 불안정 해소는 단순한 개인적 해결을 넘어 관계 사이에서 해결을 필요로 한다. 결국 현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개인이 추구할 구원의 방향은 공동체 안에서의 실천적 행동에서 찾을 수 있다. 어바등에 드러난 여러 층위의 구원을 분석함으로써 구원의 지향점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부족함을 직면하고 회복하며, 타인을 위해 기꺼이 책임을 나누고 악의 고리 끊어줄 선의 고리를 시작해내는 것이다. ‘선의의 순환’은 개인이 완성할 수 없고, 개인에서 시작하여 집단으로 나아가며 공동체 안에서 순환하는 과정을 통해 실현된다. 이렇게 시작된 선의는 결국 개인에게 돌아와 자신을 구원하는 동시에 공동체 전체를 구원하는 현세적 구원의 모습을 보여준다.

1) 김영석. (2001). 국제형사재판소규정상의 戰爭犯罪. 국제법학회논총, 46(3), 139-153.
2) 그러나 보충성의 원칙적으로 피해자, 가해자의 국적에 의해 자국 법률이 우선 되기에 실질적인 처벌을 기대하기는 오랜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3) 에밀 뒤르켐.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 Vol. 1. 경기도 파주시 : 한길사, 2020.
4) 막스 베버, ‘탈주술화’과정과 근대 학문·종교·정치, 전성우 역, 경기도 파주시 : 나남출판, 2002
5) 마조노 스스무, 『現代救濟宗敎論.(현대 일본 종교문화의 이해』, 박규태 역, 경기도 파주시 : 청년사,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