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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난 ‘무속인 거리’의 붕괴―사람이 싸우는 것
물수제비 기자
@bulsujebi
    언제나 잡다한 걸 다루기로 유명한 칼럼답게(이런 칼럼을 받아들여 주는 잡지 〈무지개 고래〉에는 언제나 감사할 따름이다), 이번에는 조금 더 기사스러운 글을 써 보기로 했다. 늘 그렇듯 이 원고를 정서해 준 편집부에 감사를 표한다.
    거두절미하고 이야기해 보자면 21세기가 되어도, 국명이 통일 한국으로 바뀌어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아파트가 모인 주거 구역이 있다면 그 옆에는 상가가 있고, 주택가가 늘어섰다면 재래시장이 있으며, 특정한 업체끼리 모여 생기는 특화 거리가 있다.
    가구 거리, 웨딩 거리, 완구 거리 등으로 대표되는 특화 거리는 온라인 쇼핑몰이 대세가 되면서 여러 부침을 겪었다. 해외 쇼핑몰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들어온 이후로는 ‘오프라인 카탈로그’ 역할일 뿐이라는 목소리마저 나왔다. 하나 쇠락하는 특화 거리 가운데서도 위용을 유지 중인 거리가 적지는 않은데, 대표적으로 ‘점술 거리’를 꼽을 수 있겠다. 지자체에서 공식적으로 여기가 점술 거리다, 하고 홍보한 적은 없다. 하지만 한때 미아리가 점술 거리의 대명사로 불렸으며, 이후로도 홍대나 압구정동 등 점술 거리는 흔히 조성된 특화 거리였다.
    신년이 되면 각종 은행 홈페이지 등이 토정비결, 사주팔자 페이지 등을 무료 공개하고, 어플로 점을 보는 시대가 된 지금도 ‘점술 거리’는 살아남았다. 오히려 온라인으로 손쉽게 접할수록 오프라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진짜’는 더 잘 맞힐지 모른다는 아우라가 생기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이런 신비함을 파는 마케팅으로 유명했던 곳은 수원 ○○동 무속인 거리.
“굉장했죠. 무슨무슨 보살이니, 무슨무슨 신당 하는 간판이 좌르륵 늘어선 게.”
“깃발도 알록달록하니 걸어놓고 말이야. 그 알록달록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야. 요새 햇빛에 붉은색이 얼마나 금방 빠져.”
    이곳이 택한 생존 방식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정제된 낡음’이다. 점술이 유행한다지만 무속을 향한 낮은 인식은 여전하니, 간판이며 인테리어에서 무당집 표식을 빼라는 것이 이전까지의 점술 거리였다면, 정반대로 노선을 정한 것.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이 발상은 대박을 터트렸다. 오히려 너무 옛날 같아서 믿음이 간다며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특성상 공식적인 특화 거리로 지정되진 못했으나 그 점이 수원 무속인 거리의 영업에 지장을 주진 않았다.
    하나 성업 중이던 수원 무속인 거리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각 포털 지도 앱에서는 몇몇 신당이 아직 표시되어 착각하기 쉬우나, 막상 와 보면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가득하던 점집 간판은 떨어져 나가고, 그나마 깃발이 남은 집도 전부 다 색이 바랬다.
    대체 이 거리는 어쩌다 사라져 버린 걸까?
 
“획기적인 미친놈이었지. 그놈 덕에 한 달 장사를 그대로 공쳤었는데, 이제는 한 달이 다 뭐야. 아주 결딴 나게 생겼어.”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먼저 찾은 곳은 무속인 거리에서 가장 가까운 재래시장이다. 오전 9시, 차양 막이 활짝 펼쳐지면 시장도 문을 연다. 입구 쪽에 자리한 청과물 가게를 낸 지도 10년 차라는 천 씨는 순순히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무속인 거리가 흥하는 동안 행정 구역 ○○동은 그 혜택을 같이 보았지만,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이들을 고르라면 바로 이 재래시장의 상인들이다. 거리를 찾은 손님들이 시장을 자주 찾기도 했지만 진정한 큰손은 따로 있었다. 바로 무속인들이다. 신당을 새로 차리거나 굿을 할 때마다 떡이며 과일, 고기 등이 뭉텅이로 팔려 나갔다. 촛대며 천도 무속인들에게는 소모품이다 보니 고정 거래처를 얻은 시장은 활기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천 씨의 증언에 따르면 한 사람이 나타난 이후 무속인 거리며 시장의 활기는 뚝 끊겨 버렸다.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런 의문에 시장을 돌아다니며 취재를 계속해 보았다. 답은 똑같았다. 이 거리의 쇠락은 단 한 명이 불러왔다고 말이다.
처음 그가 나타났을 땐 아무도 그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양친에게 이끌려 반강제로 왔다는 듯한 모양새는 매우 흔했기 때문이다. 배달을 갔던 차에 그를 처음으로 목격했던 정육점 최 씨가 이나마도 기억하는 건 그가 막 거리에 도착했을 때, 맨 안쪽에 있던 신당 두어 곳의 문이 벌컥 열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두말하지 않고 짐을 싸서 다음 날 이사를 나갔다.
“인제 생각해 보믄 신빨 죽이는 사람들이었던 게지. 그 꼴 안 보고 일찌감치 나섰으니까. 주문 별로 안 넣어 준다고 명함 안 받아 놓은 게 그렇게 후회되더라니까.”
    최 씨는 그날 저녁, 청년이 들어갔던 당집에 고기 배달을 갔다. 바로 굿을 하기로 결정되었던 모양이지만 시킨 양으로 보아 아주 규모가 큰 굿은 아니었다. 부모에게 끌려올 정도면 이 정도 굿으로도 충분하겠다고 최 씨는 추측했다.
    그러고서 며칠이나 지났을까. 다시 배달에 나섰던 최 씨는 남자가 굿이 효험이 없었으니 환불해 달라며 난리를 치다 쫓겨나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때까지도 흔히 보는 광경이었다. 그런데 그날을 기점으로 서서히 배달 일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장사에 지장이 간 건 최 씨뿐만이 아니다. 청과물점도, 안쪽의 천 가게도 주문이 들어오질 않았다.
    원인은 금세 찾아낼 수 있었다. 저쪽에서 먼저 찾아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이 무당은 사기꾼입니다’라는 글자가 콱콱 박힌 전단지가 시장 바닥에 흩날리는 중이니 모를 수가 없었다. 당황한 최 씨는 무속인 거리로 가 보았다. 전단지와 같은 문구가 박힌 플래카드가 바람에 나부꼈다.
“생긴 건 멀끔했는데 말이여. 말이 안 통하는 종자였다니까.”
    한 손에는 확성기, 한 손에는 전단지 묶음을 든 개인과 신제자를 비롯해 경호원까지 고용한 무속인이 맞붙는다면 으레 후자가 이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에 이긴 건 청년 쪽이었다. 난장의 대가로 굿을 두 번 더 치렀다는 청년은 이후 거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청년이 휘두르던 플래카드를 천 가게에서 일하던 박재희(가명) 씨가 이어받았다.
 
“이름은 재희로 해 주실 수 있나요? 요새 좋아하는 모델이에요.”
    좋아하는 모델의 이름을 가명으로 해 달라 부탁하면서 그녀는 순하게 웃었다. 무속인 거리가 무너진 이후, 박 씨는 재래시장에서 떠난 유일한 사람이었다.
“다른 분들이야 거기가 터전이니까. 전 거기서 장사를 시작한 게 한 1년? 1년 조금 안 됐나? 그랬죠.”
    임대 계약서에서 역산해 본 기간은 11개월 하고도 일주일. 가게를 접은 박 씨의 손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다소 의아해지는 얘기였다. 아무리 자영업이 어렵다 하나 박 씨가 다름 아닌 천 가게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사를 위해서 필요한 건 음식뿐만이 아니다. 무속에서 말하는 영가(靈駕), 즉 영혼을 위한 옷이며 신당을 장식하는 천 등 피륙 소비량 역시 어마어마하다. 즉, 근처 재래시장에서 유일한 천 가게였던 박 씨의 가게와 무속인 거리의 흥망은 본래 같이 가야 했다.
    그런데도 박 씨는 자기 손으로 무속인 거리에 대항하는 플래카드를 휘둘렀을 뿐만 아니라 빈손으로 그곳을 떠났다. 이제는 그곳에 미련도 없다며, 박 씨는 허심탄회한 어조로 지난 11개월을 이야기해 주었다.
“장사야 잘되는 것처럼 보였겠죠. 근방 무당들이 다 천 끊어 가고 옷 만들어 달라 했으니까. 그걸 혼자 한다고 일주일에 다섯 시간 잤다가 쓰러지고…….”
    납품할 일거리가 하루가 멀다 하고 쌓이지만 직원을 고용할 순 없었다. 박 씨를 이곳까지 이끈 무속인 A씨가 지금은 믿을 만한 인연이 없다고 허락하지 않은 탓이다. 그런 판국에 월말이면 장부를 정리해 A씨에게 가져가야 했다.
    그렇다 한들 A씨에게 직접 보고하는 것도 아니다. 신제자가 장부를 받아 가선 박 씨의 몫을 ‘정산’해 줬다. 가게 임대료는 내준다며 거들먹거렸지만 사실 다른 신제자 명의로 된 건물이었다. 사실상 A씨가 가진 건물이었다는 뜻이다. 임대료는 그가 이미 알아서 징수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박 씨는 A씨의 뜻을 따라 계속 일했다. 그녀에게 A씨는 가족의 혼을 구해 준 은인이었다.
“객사하면 구천을 떠돈다고 하잖아요. ……꿈에 계속 나와서, 혹시 집에 오지 못하고 죽었나 하고 굿을 하러 다녔어요. 근데 그분이 굿을 하니까 꿈이 딱 멈춘 거예요.”
    신이 임하신 결과라고 믿게 된 박 씨는 A씨에게 점점 의지하게 됐다. 사망 보험금이며 저금을 다 날린 후에는 A씨를 따라 이 거리로 이사를 결심했다. ‘믿을 만한 일손이 필요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 결과였다.
“그분 따라 이사한다 했을 때, 친구들이 다 말렸어요. 네 돈 다 털어먹고 이제는 몸까지 털어먹으려는 거다, 이러다가 다시는 너 안 본다…… 그땐 진짜 눈에 뵈는 게 없어서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랬죠. 나는 지금 신이 중요하게 쓰시는 분의 손발이 되러 가는 거니까. 그러다 복을 쌓으면 저승 간 사람 얼굴 한 번 더 볼 수 있지 않겠냐 하고.”
    박 씨는 그러면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녹음 파일을 하나 들려주었다. A씨로 추정되는 인물과 박 씨가 나눈 대화가 고스란히 들려왔다. 방금 박 씨가 한 말을 A씨가 똑같이 하고 있었다.
“그 시장에서야 1년 안 되게 있었지만, 저런 말을 이미 몇 년 듣고 살았어요. 그분이 하는 말이면 다 듣고. 어머, 제가 지금도 그분이라고 불러요? 아예 입에 붙어 버렸네. 어쩔 수 없어. 오래 지냈는걸. 지금 와서 보면 인정하기 싫기도 했던 거 같아.”
    A씨를 만난 후의 모든 시간이 박 씨를 붙잡았다. 그녀의 눈을 가리던 안대가 떨어진 건 앞서 언급한 청년이 나타난 후다.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딱 그 사람 나타났을 때 바로 거리에서 이사 나간 집이 몇몇 있어요.”
    평소 A씨는 그들을 경원시했다. 장사할 줄도 모르는 족속들, 그게 A씨의 평가였다. 진짜로 수행만 하고 싶거든 기도터나 돌아다닐 일이다. 거리에 온 것 자체가 장사를 하겠다는 건데 자기들끼리만 고고한 척한다는 것이 싫다고 A씨는 틈만 나면 말했다. 한데 이 무당은 사기꾼이라고 악쓰며 외치는 소리가 몇 주고 이어졌을 때, 박 씨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근데 지금 문간에서 난장 치는데 못 막는 무당도 그렇고, 내가 봐도 절대 물러설 것 같지 않은 남자가 저러고 있는데 으레 지나갈 것이다 하는 그분도 좀. ……뭐랄까. 이놈들 지금 진짜 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건 맞나? 싶은 거 있죠.”
    하루, 이틀…… 전단지가 뿌려지고 플래카드가 휘날리는 가운데 박 씨도 어설프게 준비해 보았다. 길 건너편 인쇄소에 남자가 한 것과 비슷하게, 대신 이름만 바꿔서 유인물을 제작해 달라 주문을 넣었다. 정말 신이 곁에 있다면 이 정도 수작은 금세 들킬 테니, 어쩌면 괜히 집에 쓰레기만 늘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데 아무런 제재도 없이 바로 다음 날 유인물을 한 손에 들고 귀가했다.
    저 남자가 언제까지 저럴 것 같으냐고 물어보았다. A씨는 굿 한 번 더 받고 나면 포기하고 가지 않겠느냐고 코웃음으로 넘겼다. 무속인 거리의 무당 서넛이 더 달라붙어 제를 치르고도 남자는 여전했다. 박 씨는 그제야 실감하게 됐다.
“지금 A씨에게 신은 없다고. 나는 그냥 사기를 당하고 있는 거라고 말이에요.”
    위령제를 치러 주던 과거의 A씨도 그랬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A씨에게 인생이 거의 저당 잡혀 있던 박 씨는 이제 자신의 저축을 돌려받을 때가 됐다고 느꼈다. 기어코 굿을 한 번 더 받아 낸 남자는 거리에서 사라졌지만 그가 휘두르던 깃대는 당집 한쪽에 고스란히 남았다. 삿된 기운이 서렸다며 함부로 치울 엄두를 못 내던 깃대를 박 씨가 주웠다. 그리고 자신이 휘둘렀다.
“멋지게 말해 드리고 싶은데. 그냥 악만 썼지, 뭐라고 했는지는 나도 기억 안 나요. 왜 돈 안 주냐고, 너 지금 진짜 신 모시는 거 맞냐고, 내나 그런 소리 했겠지.”
    A씨의 장사가 망하기엔 그거면 충분했다. 신제자도 아니면서 A씨를 극진히 따르는 단골―박 씨의 존재는 그를 찾는 손님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던 것이다. 나날이 줄어 가는 손님에 A씨는 미뤄놨던 임대료를 한 번에 내라며 박 씨를 들볶았다. 박 씨도 참지 않았다. 자신이 자발적으로 낸 이전의 기부금 같은 건 어쩔 수 없다 치지만, 이 시장에 와서 일한 값은 받아내야겠다며 그를 고발했다.
    그 과정에서 무속인 거리 전체가 쇠락하기 시작한 건 박 씨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그럴 생각이 아예 없던 것은 또 아니었다.
“일찌감치 뜬 사람들 빼고는 다 한통속 같았죠. 그게 맞나? 소문 날 거면 다 나라, 하면서 깃대 신나게 휘두르니까 기분은 좋던데요.”
    뜻한 바는 이루어졌으나, 재래시장 상인회는 점잖게 박 씨에게 이곳을 떠날 것을 권유했다. A씨와의 민사는 다른 데 가서 해결해도 되지 않느냐는 말에 결국 박 씨 또한 먼저 가게를 정리하고 거리를 떠났다. 소송은 아직도 지지부진 이어지는 중이지만 박 씨는 그래도 퍽 홀가분해졌다며 웃었다.
“그러니까 따지자면, 먼저 왔던 그 남자는 저한테 영웅인 셈이죠. 그 사람 덕에 눈을 떴으니까요.”
    혹시라도 그 남자를 다시 만나고 싶으냐고 묻자, 박 씨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도 자기 마음 풀려고 한 일에 내가 멋대로 영웅처럼 여긴다고 하면 당황스러울걸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 사람을 영웅으로 기억하고 싶어요. 다시 만나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그게 깨질 테니까요.”
    다시 무속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마음 안의 등대는 필요하다. 박 씨와는 이 말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신을 앞세운 무속인 거리는 이렇게 한 사람과 다른 또 한 사람에게 무너졌다. 흔히 무당―무교(巫敎)의 본질은 신과 사람 사이를 중개하는 것이라 한다. 그런 교리에 비춰 보면 무속인 거리가 사라진 건 그곳에 있던 무속인들 태반이 중개보다는 사익을 밝혀서라고 볼 수 있겠다.
    두 사람이 무너트렸다 적지 않은 건 그 둘이 결코 함께 움직인 것은 아닌 탓이다.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다른 한 사람이 문 밖으로 뛰어 나갔지만 서로 어떤 의견도 주고받은 적 없다. 하지만 이것을 인간이 쌓아 올린 역사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신을 모시는 자들이 떠난 거리 옆에 아직 시장은 남아 있다. 그들이 남아 있다면 그 거리는 언제고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 허구의 잡지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