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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명 행위에 의한 인물의 역할 유동성
: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의 도가적 고찰
루제

@t_bLUEj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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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연산호 작품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에 등장하는 주요 호칭들이 작품 속 인물의 역할을 규정·변동시키는 양상을 도가사상의 관점에서 분석하여 작품 전체의 전반적인 주제 의식을 철학적으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동북아시아의 명학(名學) 전통 속에서 노자가 제기한 무명론(無名論)은 도가사상에서 이름이 실재를 은폐하거나 일정한 의미를 고정함으로써 존재를 제한하는 문제를 비판한다. 따라서 명명(命名) 행위에 대한 이러한 철학적 회의는 역할 왜곡, 역할 교환, 역할 전환 등 작품 내 인물의 역할 변화를 명명에 의한 것으로 해석할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작품 속에서 ‘구원자’ 등의 다양한 호칭은 무한교 신도들이 희생을 미화해 폭력을 정당화하는 장치, 박무현과 정상현의 이름 교환이 역할 전도로 이어지는 장치, 김재희가 이름 너머의 관계성을 회복하는 장치 등으로 작동하여 인물의 행위 결정 및 관계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서사적 요소로 구현된다. 궁극적으로 본 연구는 이름·역할·존재의 관계성을 철학적으로 고찰하는 작품을 통해 웹소설 장르 서사의 종교·신화적 명칭 사용 연구에도 확장 가능성을 제시한다.
키워드: 도가, 이름[名], 명실[名實], 명칭, 호칭, 역할


1. 서론
    연산호의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는 회귀 설정을 기반으로 한 근현대 판타지 웹소설로, 주인공 박무현이 특정 시점의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다시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해당 작품은 단순한 시간 회귀를 넘어 주인공과 대립하는 종교집단 등의 장치를 활용해 인간의 본성, 현재의 중요성 등을 서사적으로 풀어내어 다양한 종교 및 신화와 관련된 명칭들이 등장한다. 특히 원작 내 주인공의 주요 분기점이 시작되는 배경인 백호동은 주작동, 청룡동, 현무동 등과 함께 고대 도가사상의 신화적 동물인 사신(白虎, 朱雀, 靑龍, 玄武)에서 유래된 명칭으로써 작품의 철학적 해석 가능성을 확장한다.
    본 논문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원작 내 여러 호칭에 따른 역할의 유동성을 도가사상의 관점에서 분석함으로써 작품 전체의 전반적인 주제 의식을 철학적으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2. 이름(名)의 의미
    동북아시아에서 이름을 중시하는 명학(名學)은 공자로부터 시작된 오랜 전통이다. 이러한 학풍은 이름이 지닌 의미를 탐구하는 개념론 중심의 이론이지만, 언어와 의미의 연결 방법에 중점을 두는 서양 언어철학의 의미론과 달리 언어의 의미적 정확성과 실제 활용에 관심을 가지며 사회정치적 맥락에서 전개되는 고대 중국 철학의 특성이자 한계를 보여준다. 명학은 고대 중국의 사회정치적 혼란 속에서 그 원인을 이름(名)과 실제(實)가 부합하지 않는 명실 관계의 불일치 문제에서 찾는 것으로 이어졌다. 중국의 학자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질서를 건립하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탐색했으며, 도가사상의 대표적인 학자인 노자는 무명론(無名論)을 제시했다.¹⁾

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참된 이름이 아니라(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제1장).²⁾
 
    『도덕경』의 제1장의 첫 번째 구절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도가사상은 이름으로부터 자유로운 무명(無名) 상태가 본성을 왜곡하지 않는 존재 방식이며 명명(命名) 행위를 인위적이고 제한적인 것으로 본다. 언어가 대상을 직간접적으로 지칭한다고 보는 관점에서 이름은 타인의 생각을 내포한다.³⁾ 그러나 구별되는 이름을 가지면 욕망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기에 겉으로 드러난 세계의 표면적인 현상(名)만 볼 수 있게 된다.⁴⁾ 또한, 특정한 이름을 규정하면 존재는 그 한정된 의미에 갇혀 다른 것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막힌다.⁵⁾ 연산호의 작품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가 일정한 명칭이 작품 내 역할을 규정하거나 제한하는 형태로 구체화되며 서사 내부에서 호칭이 인물의 정체성과 관계 구조를 매개·고정·전환하는 핵심 요인으로 기능함을 보여준다.
 
3. 명칭에서 비롯된 역할 변화 분석
3.1 역할 왜곡: 무한교의 ‘구원자’
    작중 등장하는 사이비 종교집단 ‘무한교’의 신도들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가려는 집단적 욕망을 지닌다. 이들은 ‘과거로 돌아가는 기적’을 겪는 종교적 구세주를 ‘구원자’로 칭하며, 말 그대로 시간을 돌리는 기적으로만 자신의 잘못이나 불행을 없애 해결해줄 유일한 존재라고 믿고 그를 찾아 해저기지 안팎을 돌아다닌다. 이러한 믿음은 일정 인원이 죽어야 기적이 일어난다는 조건 등을 정당화하여 테러 등의 비윤리적이고 과격한 행위를 유발한다. 무한교 신도들은 ‘구원자’의 등장을 모든 과거가 용서받을 계기로 여기며 그 지위에 명예와 신성(神聖)을 부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명 ‘구원자’의 실재는 “불멸하는 뱀을 위해 특별한 제물”이 되는 것에 불과하며,⁶⁾ 신도들이 사용하는 명칭은 집단의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종교적 의식의 본질을 감추고 종교적 희생을 미화하는 인위적인 언어다. 무한교 신교들의 호칭은 단순한 종교적 맹신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한 명칭을 통해 개인의 책임을 외부로 전가하고자 하는 심리적 기제를 반영한다. 도가사상 내부에서 경계하는 인위적 명분에 기대는 삶(有爲)의 전형적 사례로, 나아가 신도들이 기대하는 해방의 시작이 아닌 집단적 파멸을 초래하는 장치라는 점에서 명칭이 내포한 허구적 이미지와 실질적 행위 사이의 간극에 대한 문제가 극대화된다. 따라서 무한교는 피상적인 언어 표현을 통해 진상을 은폐하며 희생의 본질을 왜곡하는 형태로 종교적 역할을 설정한 것이다. 즉, 명칭이 곧 역할을 생산한다는 전제에 따라 일정한 명분을 통해 인간의 행위를 규정하는 체계가 폭력과 도구화로 빠르게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3.2 역할 교환: 박무현에서 정상현, 정상현에서 박무현
    작중에서 무한교는 종교의 교리에 따라 보석에 새긴 ‘박무현’이라는 이름이 진정한 구원자를 나타낸다고 확신하며 그를 찾아다닌다. 이에 따라 주인공 박무현은 자신에게 부여된 ‘구원자’의 역할에서 벗어나고자 자의 또는 타의로 자신의 이름 대신 일반인인 ‘정상현’을 사칭한다.⁷⁾ 그러나 박무현이 버린 ‘구원자’의 이름은 여전히 표면적으로 매혹적인 지위를 수반한다. 그 명칭은 소유적 욕망을 자극하여⁸⁾ ‘박무현’으로 오해받은 정상현이 오히려 무한교의 가짜 구원자로 자리 잡는 행보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⁹⁾ 결과적으로, 김재희로부터 무한교의 ‘구원자’가 되는 조건을 들은 박무현이 “바꿔치기가 가능하다면 오늘 만난 사람들 중에서 제일 어렸던 정상현에게 제물의 지위를 주고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일반인이고 싶은” 상상을 한 것처럼¹⁰⁾ 작중 이름이라는 명칭이 곧 역할을 부여하여 두 인물의 역할 교환이 성공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름의 교환이 역할의 교환으로 이어지는 극단적 장치는 무한교가 실재하는 인물의 존재를 종교적 의식 수행을 위한 형식적 요건으로 전락시켰음을 시사한다. 결과적으로 무한교 내 ‘구원자’의 지위는 명칭의 가치가 실제 구원 능력보다 우위에 놓여, 존재가 도구처럼 대체 가능한 구조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작품 말미에서 회귀 능력이라는 실질적인 가치를 가진 진정한 구원자가 사라진 이후 이름만 남은 구원자를 붙잡고 있던 신도들이 무질서에 빠져 결국 무한교가 와해되는 서사 전개는 명실 불일치에 대한 도가사상의 비판을 극적으로 형상화한다.¹¹⁾

3.3 역할 전환: 김재희의 ‘친구’
    작품 속 인물 중 김재희는 호칭에 따른 역할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입체적 인물이다. 처음에 김재희는 박무현과 협력하는 해저기지의 엔지니어로 등장하지만, 이후 무한교 신도로 밝혀지며 인물에 대한 인식이 전복된다. 특히 그는 박무현을 ‘구원자님’이라고 칭하면서도 집단을 위한 희생이 아닌 자신 한 사람만을 구원해달라는 사적 요청을 하며, 무한교와 무관한 우연한 회귀 경험이 있어 명실의 괴리를 자각한 상태에서 호칭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인물이다. 김재희는 앞서 회귀를 경험한 정보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제시하면서도 위계적 호칭을 통해 수동적인 위치에서 구원을 요구하며 자신을 방어한다. 그러나 이러한 계산적 호칭 사용은 결국 본질적 관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박무현의 다음 회귀를 기약하며 다가오는 죽음을 수용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반면 작품 후반부에서 박무현이 먼저 ‘친구’라는 호칭을 제안하며 최종적으로 수평적 관계로의 역할 전환을 시도한다.¹²⁾ 이는 또 다른 명칭에 두 사람의 관계를 규정할 한계가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으나, 단순한 호칭 변경이 아니라 기존의 호칭에 내재한 수단적·위계적 구조를 해체해 실재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도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김재희는 상호 존중과 이해를 기반으로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계를 재구성하여 도가사상에서 말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질서에 가까운 이름 너머의 관계성을 회복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¹³⁾
 
4. 결론
    본 연구는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에서 작중 호칭이 단순한 지칭을 넘어 인물의 행위·관계를 구조화하는 장치로 작동하며 역할 부여·고정·전환 과정이 도가사상의 명실 관계에 기반을 두어 논의됨을 밝혔다. 무한교는 ‘구원자’의 명칭으로 희생과 폭력을 미화하여 역할을 왜곡하고, 박무현-정상현의 이름 교환은 명칭이 실재보다 우선할 때의 존재 대체 가능성을 보여주어 명실 관계 불일치의 문제를 드러낸다. 최종적으로 김재희와 박무현이 ‘친구’라는 호칭을 통해 위계 기반의 관계를 해체하며 이름 너머의 존재 그 자체를 인정하는 무위자연적 관계를 회복한다. 이는 인간이 일방적 구원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상호적 관계와 공존을 통한 주체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작품 전체 주제 의식과 맞닿아있다.
    이러한 분석은 웹소설 장르가 철학적 의미를 서사적 장치로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작품 속 종교·신화적 명칭이 세계관 장식 요소를 넘어 정체성·관계 형성 장치로 기능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후속 연구에서는 도가 사상가와의 직접 대응 분석, 타 회귀 서사의 명칭 구조 비교 등을 통해 연구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명칭이 인물의 서사 형성에 개입하는 양상에 관한 비교 연구는 웹소설의 철학적 사유 가능성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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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김대수, “언어와 세계 간의 역설(paradox) 구조: 역설을 대하는 동서양 철학의 입장들.” 철학논총 82, no.4(205); 125-148.
 
노자, 老子, 김학주 옮김, 서울:명문당, 2002.
 
박혜순, “생명과 명실(名實)의 문제.” 철학논집 32(2013): 185-213.
 
송도선, “노자의 『도덕경』에 담긴 ‘무(無)’의 교육적 함의.” 교육사상연구 27, no.2(2013): 95-122.
 
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서울:문피아, 2023.
 
유희성, “순자는 왜 이름을 중시하는가?” 범한철학 40, no.1 (2006): 183-203.

1. 유희성, 순자는 왜 이름을 중시하는가?, 범한철학, vol.40, no1 (호남: 범한철학회, 2006), 184.
2. 노자, 老子, 69~70면.
3. 김대수, 언어와 세계 간의 역설(paradox) 구조: 역설을 대하는 동서양 철학의 입장들, 철학논총, 제82집 (대구:새한철학회, 2015), 133.
4. 앞의 책, 140.
5. 송도선, 노자의 『도덕경』에 담긴 ‘무(無)’의 교육적 함의, 교육사상연구, vol.27, no.2 (한국교육사상학회, 2013), 107.
6. 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8권 (서울: 문피아, 2023).
7. 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12권, 14권, 16권, (서울: 문피아, 2023).
8. 박혜순, 생명과 명실(名實)의 문제, 철학논집, 제32집 (서울: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2013), 197.
9. 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16권, 17권 (외전) (서울: 문피아, 2023).
10. 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13권 (서울: 문피아, 2023).
11. 박혜순, 생명과 명실(名實)의 문제, 철학논집, 제32집 (서울: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2013), 195.
12. 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14권 (서울: 문피아, 2023).
13. 송도선, 노자의 『도덕경』에 담긴 ‘무(無)’의 교육적 함의, 교육사상연구, vol.27, no.2 (한국교육사상학회, 2013), 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