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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는 법
비온뒤
@123_4fterR4IN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약칭 ‘어바등’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인용되었습니다. 그 중 ‘어바등’과 엮어 서술할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되는 작품 4가지를 골랐습니다. 412화에 언급되었던 두 가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새벽의 저주’, 413화에 등장하였던 두 권의 책 ‘폭풍의 언덕’과 ‘파우스트’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며, 편의와 가독성을 위해 등장한 회차 순으로 서술할 것이나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읽으셔도 무관합니다.
    412화에 등장하였던 두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새벽의 저주’는 모두 ‘어바등’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각자의 방식대로 비슷한 얘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두 영화와 ‘어바등’, 세 작품 모두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살아남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부유한 삶을 누리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은 격동의 시대에서 가족을 지키고자 자신의 짝사랑도 묻어둔 채 갖은 노력을 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그의 강인한 모습에 반한 사업가의 청혼을 받아 승낙하며 주인공은 다시금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게 됩니다. 여유가 생기자, 그녀는 다시 짝사랑을 그리워하게 되고, 그에 대한 사업가의 진심 어린 구애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런 그의 태도에 지친 사업가는 결국 그의 곁을 떠납니다. 그가 떠나고 나서야 주인공은 자신이 사랑이라고 믿어왔던 감정은 사실 사랑이 아니었으며, 진정 사랑을 갈구했던 상대는 사업가였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은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 모든 상황을 이겨낼 것임을 암시하듯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는 말을 남기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새벽의 저주’의 주·조연 일행은 영문 모를 바이러스가 퍼진 세상에서 생존하고자 한 슈퍼마켓에 모이게 됩니다. 갑작스레 퍼진 바이러스 탓에 이들은 모두 아무런 정보도 없이 살아남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처지에 놓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상황을 대하는 방식은 너무도 다릅니다. 어떤 이는 사람을 구하고자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도왔으나, 어떤 이는 타인을 공격하며, 어떤 이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같은 편을 배척하고, 어떤 이는 자신의 감염 사실을 숨겨 다수를 위험에 처하게 합니다.
    ‘어바등’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나 인물들의 행동 양상도 위 두 영화와 비슷합니다. 가령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이 과거의 짝사랑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하는 부분은 무한교의 신도들이 과거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하여 구원자라는 존재에 의존해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모습과 유사하다고 느껴졌으며, 주인공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어왔던 감정이 실은 허상이었음을 깨닫는 부분은 무한교의 신도들에게 신해량이 망인을 되살리려는 것은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님을 말해주는 장면과 다소 닮아있다고 느껴집니다. 저 한마디로 무한교도들이 자신들의 그릇된 행동을 깨달았으리라 생각되진 않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추구하는 바는 이루어지기 힘든 허상이며, 옳다 믿는 신념은 그릇된 것이라는 부분에서 닮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각자 추구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새벽의 저주’의 주·조연들에게서 엿볼 수 있습니다. 해저기지 탈출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두고 있음에도 어떤 이들은 타인의 죽음을 위해 탈출정을 고장 내고, 총기를 난사하며, 도움을 구하는 이를 지나치지만,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위험을 무릅쓰고 타인을 구하며, 악인과 선인을 구분하지 않고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이 과거를 딛고 일어나 삶을 살아갈 것임을 암시하는 내용과 ‘새벽의 저주’의 주·조연 일행들이 암담한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은 ‘어바등’에서 여러 번 언급되었던 아무리 힘겹거나 고통스럽더라도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요 주제 중 하나를 보여줍니다.
    413화의 두 작품, ‘폭풍의 언덕’과 ‘파우스트’도 위 두 영화와 마찬가지로 ‘어바등’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은 사랑하던 여자의 복수를 위해 타인과 자신의 삶을 희생시켰으나 자신이 목표로 하던 대상이 사랑하던 여자를 너무도 닮았다는 이유로 그를 살려줌으로써 인생을 걸었던 복수를 완벽히 끝마치지 못합니다. ‘파우스트’의 악마는 인간의 본성을 두고 신과 내기하게 됩니다. 풍성하고 의미 있는 삶을 갈망하던 파우스트를 내기의 견본인물로 고른 악마는 파우스트에게 쾌락을 선사해 주는 대가로 금구를 언급하거나, 타락한다면 파우스트의 영혼을 가져가겠노라 말합니다.
    ‘파우스트’에서 금구로 지정된 ‘시간아,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는 구절은 아름답고 이상적인 현재에 머물며 미래로 향한 발걸음을 멈추고 싶어 함을 의미하는 문장입니다. 과거에 매몰된 채 현재를 과거에 바친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과는 달리, ‘파우스트’는 미래로 나아가지 않는 것을 다소 죄악시하며 타락이라 일컫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한교도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과거의 행복만을 그리워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과거로 돌아가고자 그릇된 선택을 하는 무한교도들의 모습은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과 유사합니다.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은 복수를 위해 복수 대상자가 아닌 그들의 자녀들을 학대합니다. ‘어바등’의 무한교도들은 자기들 과거의 행복을 찾기 위해 해저기지의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진실일지도 불확실한 구원자의 존재를 믿으며 모두를 위험에 빠트렸으나 돌아온 것은 종교의 몰락입니다.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수를 꿈꾸었으나 계획대로 완결짓지 못합니다. ‘파우스트’에서는 반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어바등’이 전하고자 하는 바도 그렇습니다. ‘파우스트’에서 악마와 내기하였던 신은 ‘인간은 노력하지 않는 이상 방황하는 법’이라고 말합니다. 과거를 딛고 미래로 향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방황하게 될 것임을 의미하는 이 말은‘파우스트’의 궁극적인 주제인 ‘인간은 노력을 멈추지 않는 한 구원받을 수 있다.’와도 비슷한 의미를 전합니다. 미래로 나아가고자 노력하지 않던 무한교도들은 노력을 멈추었기에 구원받지 못하였으나, 아픈 과거를 딛고 삶을 향해 나아가고자 했던 ‘어바등’의 주·조연들은 해저기지 탈출이라는 일종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은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자신의 최후를 받아들임으로써 본인에겐 만족스러울지도 모르는 최후를 맞이합니다. 위의 세 가지 이야기 모두 결국 모든 것은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되며,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만족할 만한 끝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착한 인간은 비록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알고 있다.’‘파우스트’에 등장하였던 또 다른 문장입니다. 서술한 5가지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전부 비슷해 보입니다. 다가올 미래가 두려워 과거에만 머무르는 시간이 지속된다면 삶의 방향성을 잃고 헤매게 될 것이며, 진정한 구원을 원한다면 힘겹거나 절망스러울지라도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저는 이것이 다섯 작품의 궁극적인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정해진 과거와는 달리 닥쳐올 미래는 알 수 없지만 반대로 바꿀 수 없는 과거와는 달리 미래는 현재의 나로 인해 바뀔 수 있습니다. 모두 스스로 구원받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