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희를 통해 보는 무너진 일상의 재건과 회복에 관하여.
지난 겨울 뛰쳐나온 광장에서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약칭 ‘어바등’의 깃발을 만나 형태 없는 서재에 고이 모셔두었던 책을 다시 펼쳤습니다. 작품 초반부 국가적 트라우마를 관통하는 묘사에서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그대로 덮어둔 지 오래였는데, 당시 세태를 살아가는 매 순간 마음이 무참하여 오히려 어떤 고통을 마주할 용기가 솟았습니다. 같은 슬픔을 느끼는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었던 까닭입니다. 그 차가운 길바닥에 함께 선 이들과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정서로 마음을 단단하게 채우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저에게 어바등을 처음 권했던 친구도 이러한 감상으로 추천해 주었으리라 멋대로 생각하며 뒤늦게 읽기 시작한 이야기는 그 의도가 무색하리만치 재미있고도 매력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어바등을 삶의 재건과 회복에 대한 작품이라고 보자면 누구를 통해 읽는 것이 좋을까요. 모두가 각자 선택한 적 없는 고난과 상실에서 자신을 건져내며 살아갑니다. 자식이 가진 능력과 성취보다 결혼을 우선하는 부모, 안전 대책이 선행되었더라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 생의 첫머리부터 당연시했던 종교에 대한 환멸과 왜소한 여자가 최소한의 울타리도 없이 던져진 세상 같은 것들로부터요. 분투한 끝에는 대단한 보상이 따르지 않고 겨우 자신과 일상을 지키는 것이 고작이지만, 사실 가장 중요하고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전선에서 한발 물러난 인물이 있습니다. 이미 너무 많은 전쟁을 치르고 이미 너무 많은 죽음을 겪은 사람. 그럼에도 영 마뜩잖은 생의 끈을 놓지 않은 사람이.
인물과 장면을 충분히 구체화해서 이해하고 납득해야만 그 다음으로 넘어가는 편입니다. 자근자근 씹어 삼키는 느린 정독 중에도 김재희는 도통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인물입니다. 속내를 헤아리기 위해 얼마나 품을 들여야 할지조차도 쉽게 가늠되지 않아 벅찼던 것도 같고요. 주인공의 안티테제, 앞서 소진된 인물. 깊은 호흡으로 삼켜도 끝까지 쉽게 소화되지 않았던 김재희의 회복을 들여다보겠습니다.
망가진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무너진 삶은 어디에서 계속되고 있을까.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은 이들의 시간은 마저 흐르지도 못하고 어디에 고였나. 번아웃, 무기력, 정신적 외상. 각자 원인도 그 형태도 다양하지만 긴 고통 끝에 남은 것은 어느새 잿더미가 된 마음뿐입니다. 사회적 탈진, 심력을 소진한 경험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늘 현재 진행형이었습니다. 일상이 무너진 사람들은 제 친구이기도, 가족이기도, 때로는 저 자신이 그 당사자가 되기도 했지요.
예기치 못한 고난은 마땅한 이유도 없이 찾아오곤 합니다. 천재지변의 모습을 하고 무자비하게 밀려드는 압박 앞에 나와 주변을 얼마나 지키고 돌볼 수 있을까. 저는 의연하게 대처하기는커녕 생활을 무너뜨리지 않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잘 버티다가도 찰나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기도 하면서요. 당장 내 몸 하나도 마음처럼 굴러가지 않는 경험을 하고 나니, 일상의 궤도 안에서 각자 그 하루를 이겨내는 사람들에게 경외심도 들곤 합니다.
이러한 사고의 연장으로, 루프의 시작마다 박무현이 그 심신의 피로를 이기고 몸을 참 잘도 일으키는 것을 보며 내심 감탄하기도 했었는데요. 그렇지만도 못했던 회차들도 있었음이 밝혀지고는 반갑기까지 하더랍니다. 귓가를 때리는 알람조차 듣지 못하거나, 인지한 의무감을 마음에서 내몰고 다시 눈을 붙이기도 하고. 아예 넋이 나간 하루를 보내더라도, 또 마음을 다잡고 일어나는 순간은 다시 생각해도 여전히 존경스럽고요. 매일 아침 피로가 다 가시지 않은 몸을 일으키는 것이 가장 힘들게 느껴졌던 시기가 있어 더 그런 것 같은데, 이 너절한 감상은 김재희의 과거를 엿보던 때에도 다름없었습니다.
무기력은 곧잘 자기 방임의 형태로 번지기도 합니다. 침대에 틀어박혀서 제 손에 쥔 화면 밖 세상에 아무런 흥미가 없고, 그 어떤 미래에도 기대도 없어 하루의 어떤 것도 돌보지 않았던 김재희. 그가 무한교를 마주하고 스스로 몸을 일으키는 순간에는 내내 맞춰지지 않던 퍼즐 조각을 발견한 기분이었습니다. 기반이 잘못된 희망이었을지언정 몸을 짓누르던 무게를 떨쳐내고 밖으로 걸어 나오다니. 침대 안에서는 그게 가장 어려운 것이지만, 다시금 세상에 발 붙이고 살아가겠다 선언하는 순간부터는 더 많은 고난이 기다리지요. 안락하고 더러운 세계 속에 콕 박혀 있었더라면 마주하지 않아도 되었을 또 다른 고통입니다. 어렵게 일으킨 몸은 의족에 맞지 않고, 앙상했던 몸에 근육을 붙이기까지. 쓰여 있지 않은 나날이 결코 짧지 않았겠지요. 그 모두를 기꺼이 감내하게 하는 소망의 무게를 이제서야 이해합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서 아무 의미를 찾지 못했던 현재를 돌보다니. 과거를 놓지 못해서 단기 계획을 세우고 나아가다니. 계획이라는 건 현재와 미래를 담보하는 것인데도요. 대단히 서글프고도 재미있는 인물입니다. 자기 자신조차 돌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어떻게 구해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 상실조차 되돌리겠다는 의지로 방치했던 자기 자신을 붙들다니요. 사람에게 냉소하고 형에게 거듭 실망했으면서도 여전히 본인을 전부 내던질 만큼 그리워하면서요. 다시금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고요. 김재희는 말 상대조차 되지 못하는 라피도포라를 등에 지고 홀로 그 어두운 계단을 올랐던 사람이었지요. 자신을 혹사하더라도 다른 존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동시에 돌아갈 수만 있다면 사람을 해치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모순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지나간 어느 시점에 매여 나아가지 못하는 사고와 더불어 지금의 현실은 그의 '진짜' 현실이 아니기에, 어느 시점으로 리셋하면 어차피 모두 없던 일이 되어버린다는 뒤틀린 인지. 결국 지금 생에서 난다 긴다 무언가를 이루어도 잃어버린 세계보다 가치가 있지 않을 것이며, 시간을 되돌리면 그마저도 전혀, 아주 무용하리라는 생각…. 이것들이 모두 김재희에게는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라는 점이 가장 무서운 부분입니다.
김재희는 사실 신앙을 갖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타로, 사주, 신점, 종교를 전전하면서도 목표를 잊지 않았던 것처럼요. 다만 본인도 환각이었나 싶을 만큼 설명되지 않는 경험. 그 기현상을 무한교만이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주 갈급한 마음으로 오래도록 진리를 찾아 헤매었다고요. 그들이 만나고 찾은 진리가 과연 옳고 그르냐냐는 차치하고서라도, 김재희가 자신이 직접 겪은 기적과 이적에 대해 어떤 설명이라도 얻기를 바랐던 마음을 알 것 같았지요.
작중에서 김재희가 만나는 가까운 사람들은 과거로는 돌아가지 못한다고 냉정하게 단언합니다만, 이미 한번 그런 경험을 했던 사람에게는 뭣도 모르는 이들이 편하게 하는 소리로만 느꼈을 지도 모릅니다. 아니야. 돌아갈 수 있어. 당신들은 모르는 일이잖아. 전보다 더 잘 해낼 수 있어.
구원자에 대한 절박한 섬김은 맹목적인 듯 보이나 동시에 이미 루프의 실체를 겪은 당사자이기에, 경험한 적 없는 것을 믿는 종교인의 것과는 다릅니다. 가장 외로운 기억, 무한교가 그것이 거대한 환각이 아니고 현실이었음을 증명했습니다. 눈앞의 박무현이 유일한 이해자이며, 동시에 유일한 구원자입니다.
사실 이러한 상실을 겪은 사람은 김재희뿐만이 아닙니다. 김재희는 박무현의 안티테제기도 하지만, 신해량과도 대척점에 있는 인물입니다. 신해량 또한 슬픔의 신체화를 겪습니다. 근근이 견디고 버티며 이겨내는 과정과 영영 소실된 존재에게서 마저 정리하지 못한 애착이 묘사됩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불면증을 치료했지만, 지나간 사람에 대한 흔적을 여전히 몸에 지니고 있지요. 보낸다고 쉽게 보내지는 이별이 어디에 있겠어요. 무 자르듯 잘리지 않는 마음들에 대한 묘사가 이 낯선 인물들을 마음에 들이게끔 합니다.
지나간 시간은 절대로 되돌아오지 않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일도 있을 수 없는데. 매 순간 감정에 끝내 침몰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 몸을 흠뻑 적시며 우울의 바다에 빠졌다가도 다시금 스스로를 건져 올릴 수 있는 건 결국 작은 것부터 쌓아가는 성취와 사소한 연결이라고 함부로 답을 내려 보겠습니다.
엔지니어 가팀 김재희. 구원자와의 만남이 없었더라도 김재희는 회복할 수 있었을까, 고민해 보자면 그렇다고 하고 싶습니다. 사람에게 거듭 실망했던 김재희가 백애영에게 가졌던 한 조각의 긍정과 연민을 떠올리면, 아주 더디더라도 결국에는요. 박무현도 김재희를 그가 원하는 형태로 구원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숙식을 제공하는 일자리에서 꾸준하게 루틴을 회복하고, 누군가와 같은 일상을 공유하고, 그 안에서 원래의 제 성격을 조금 찾기도 했으리라고 멋대로 상상해 봅니다. 사소하게나마 즐거운 일도 종종 있었겠지요. 팀원들과 낭만 없는 구원자님을 포함하여 해저기지에서 만난 모두가 김재희가 그 방에서 스스로 빠져나왔기에 만날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물 새는 해저기지에서 당장 나가야 하는 것처럼, 의도야 어쨌든 당장 당면한 문제부터 하나하나 해결해야 합니다. 잘못된 희망을 품고서 무한교를 찾아 안락한 관짝에서 기어 나왔던 때에 애써 몸을 재건했기에 혼자서 라피도포라를 업고 사천 단이 넘는 계단을 오를 수 있었겠지요. 그렇게 야금야금 성취하고 나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또 다른 길이 열리기도 하고요. 이런 것들이 모여 이후의 삶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었으리라 생각해봅니다. 매번 한 세상을 죄 깨부수고 나올 때마다 더 큰 세상을 마주할 준비가 되는 것처럼요.
신해량이 더듬어 찾던 출구가 김재희가 자포자기해서 내지른 박치기에 트였던 걸 기억합니다. 입이 떡 벌어지게 좋은 김재희의 운도 포기하지 않고 계단을 오르지 않았더라면 없었을 순간입니다. 천운이라는 건 그렇게 작동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주한 현실들은 어쩔 도리가 없고, 영 다른 세계를 꿈꾸는 것은 너무나 허황되고요.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나가다가 더는 못 한다고 외칠 때 어쩌다 무너지는 벽 틈으로 스며드는 빛의 형태로요. 악에 받쳐 죽네 사네 머리를 갖다 박은 그 벽이 무너지면 잠깐 숨을 고르고 다시금 걸어 나오겠지요.
시간은 단방향으로만 흐르고 어떤 것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이전으로는 절대 되돌아가지 못합니다. 수선가가 되어 마구 해지고 함부로 벌어진 틈을 그저 성실하게 빈틈없이 기우고 메워 본래의 기능을 조금이씩이나마 복구하는 것이 최선이지요. 힘들게 나아온 세계는 늘 좋지만도 않고 또 다른 절망과 슬픔을 마주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나마 현재를 지속할 수 있다면 또 어디에 도착해 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김재희는 사랑받을 사주를 타고났다면서도 아주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했지요. 모델이 된 재희가 어떤 노력을 거쳤을는지, 상상해보는 것도 이제는 즐거운 일입니다.
매일 실패하더라도 가끔 성공하면서, 잠깐의 위안일지언정 스스로를 잘 일으켜 세웠노라면, 이제는 내가 나를 구해야 한다는 걸 되새기 살아가 봅시다. 고립된 개인의 투쟁은 눈에 잘 보이지 않고 대단치 않은 일상을 재건하는 일은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회복해나가는 모든 김재희를 마음 깊이 지지합니다.
어바등을 정독하고 열 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생각지도 못한 일들로 가득했습니다. 사실 인생이 언제건 원하는 대로 굴러간 적이 있었나 싶다마는, 살면서 마주했던 가장 큰 일들도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비단 나이를 조금 더 먹었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사실 이제는 예기치 못한 순간들을 기대하기까지 합니다. 반갑게 접했던 깃발이 그간 전혀 취미를 두지 못했던 웹소설이라는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힐링이 필요해서 펼쳤던 작품은 내내 눈물샘을 쥐어짜이는 나날의 연속이었지만, 덕분에 낯선 사람들을 만나서 종일 떠들고 웃음 짓는 하루가 쌓이기도 합니다. 그 깃발을 보지 못했더라면 영영 모르고 지나갔을 인연들입니다. 그렇게 추천받은 책과 노래, 영화가 좁았던 지평을 자꾸만 넓혀 주고요.
오늘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당장은 알 수 없지만 망가지고 무너진 일상을 어찌저찌 수선하여 사는 것도 충분히 즐겁다고 여기는 나날이 재희에게도 꼭 찾아올 겁니다. 외로운 마음이 정처 없이 떠도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기를 바라며, 끝으로 박보영 배우님의 수상소감을 인용합니다.
“마지막으로 혹시 너무 어둡고 긴 밤을 보내고 계신 분이 계신다면, 지치지 말고 끝까지 잘 버티셔서 아침을 맞이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