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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인물 김재희의 심리상태 고찰 및 
실존주의 철학을 통한 그의 내면적 성장 해석
페르미온
@jellyfishGFP
Ⅰ.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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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희의 근원적 고통과 그에 따른 행동 동기는, 과거의 상처에 의한 자아불안에서 비롯한다. 그는 회귀에 의해 망가진 자신이 가족에게조차 온전히 이해받을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하고, 이는 김재희가 생존의지를 상실하고 허무주의에 빠지게 만든다. 그러나 박무현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김재희의 심리상태는 변화하게 된다.
    '오렌지 재희'는 박무현의 도덕적 실천과 의지적 태도에 감명받고, 그를 일종의 절대적 존재로 이상화하게 된다. 즉 이상적 타인인 그에게 본인을 완벽하게 이해받음으로써 자아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태도는 결국 그의 파멸로 이어지고 만다. 반면 '동백 재희'는 일방적 구원이 아닌 동등한 관계를 제안하는 박무현을 마주하고 극한적 상황에서 생존의지를 회복한다. 그러나 그는 자아불안을 해소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구원'과 '친구' 사이에서 내적 갈등하며, 끝내 박무현과의 관계를 회피하게 된다. 이는 이후 실존주의적 탐구를 통해 '신앙적 도약(leap of faith)'을 하며 해소된다.
    외전에서 제시된 김재희의 실존주의적 탐구를 분석하는 것을 통해 김재희의 내면적 성장 과정이 드러난다. 특히 오렌지 재희의 사상을 상징하는 힐티 철학과 동백 재희의 사상을 상징하는 키르케고르 철학을 대조함으로써, 김재희가 이상화된 타인에 대한 수동적 의존에서, 도약을 통한 능동적인 접근으로 나아갔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김재희라는 인물의 이해에서 더 나아가, 독자에게 전하는 성장의 메세지로 작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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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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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희는 <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이후 < 어바등 >)의 주요 세 인물(박무현, 신해량, 김재희) 중 하나로, 주인공 박무현과 김재희의 상호작용은 < 어바등 >의 주제의식을 극명히 전달하는 주요 플롯이 된다. 그러나 김재희가 작품에서 가장 복잡한 내면을 가진 인물이며, 그의 표면적 대사와 행동만으로는 그의 근원적 동기나 심리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은 작품의 이해를 어렵게 만든다. 특히 회귀라는 기점에 의해 같은 인물이 다른 가치관을 보이는 모습은 김재희의 다면성을 가장 특징적으로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7회차의 '오렌지 재희'와 8회차의 '동백 재희'를 중심으로 김재희의 심리상태를 고찰하여 나타내고, 해당 심리가 어떻게 박무현과의 특정 관계로 발현하는지를 알고자 한다. 또한 외전에서 제시된 김재희의 실존주의적 탐구를 해석하여 김재희가 어떤 방식으로 성장하였는지를 서술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김재희라는 인물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최종적으로 작가가 해당 인물의 서사를 통해 독자에게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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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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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렌지 재희의 심리 고찰
    < 어바등 >에서 김재희는 주인공 박무현의 사상적 대척자이자 '구원'의 갈구자로 등장한다. 김재희는 박무현의 도덕적 실천의지를 부정하고 과소평가하며 포기를 종용한다. 동시에 그는 자신을 과거로 보내줄 것을 요구하며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고 싶다는 심리를 드러낸다. 그러나 작품이 진행됨에 따라 김재희의 대척자적 역할은 점점 축소되며 갈구자의 면모가 더욱 강조된다. 박무현을 일부러 위기에 몰아넣거나 그의 행동을 폄하하던 전반부의 태도¹⁾와 달리, 김재희의 후반부 태도는 그가 박무현의 방식을 어느정도 존중하고 인정하게 되었음을 드러낸다. 대신 그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와 상처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구원받을 당위성을 주장²⁾한다.
    그러나 김재희가 갈망하는 구원은, 평범한 무한교도들의 소원과는 전혀 다르다. 사실 김재희가 작품 내내 갈구하는 '구원'은 초반에는 무한교들의 주장과 유사하게 '과거로 돌아가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것과는 상반되는 면을 보여준다. 김재희는 무한교의 무력작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았으며, 박무현의 탈출 시도와 선의 실천에 협조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에서 박무현의 정체를 폭로하며 그를 제물삼아 '의식'을 진행하는 대신, 오히려 그에게 제물(오렌지)을 바치며 다음 회차에서 다시 보기를 기대³⁾한다. 이는 김재희가 바라는 궁극적 구원이 '과거회귀'가 아닌 다른 것에 있음을 드러낸다.
 
    김재희는 스스로도 회귀를 경험하면서 망가진 자아를 갖게 되고, 그로 인한 절망과 허무에 고통받는다. 그가 처음에 꿈꾸었던 것은 '다시 한번'이다. 형을 살릴 수 있는 기회, 손가락을 잃지 않을 기회, 자신이 했단 수만번의 나쁜 선택을 되돌릴 기회- 전형적인 무한교 신도들의 소원과 동일하다. 그러나 김재희의 발언을 자세히 들어보면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그가 갈구하는 진정한 구원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는 스스로의 상태 자체를 이해받기를 원한다. 김재희는 루프 후에 자신이 종착하고 만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자신이 정의한 스스로를 그대로 받아들여 줄 누군가를 찾고 있다. 하지만 주변의 그 누구도, 부모님조차 그를 인정하거나 이해해주지 못한다. 김재희는 ‘장애인’, ‘형 잡아먹은 동생’, ‘정신이상자’ 등의 평가에 갇혀 살아온 것⁴⁾이다.
    김재희는 각각의 평가들에 대해서 상당히 일관되게 답변한다. "자신은 장애인이지만 장애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이로 배려받고 싶지도 않다. 형이 아닌 자신이 살아남은 것은 수많은 루프들 중 하나의 결과일 뿐이며, 한 번의 결과만 더 주어진다면 더 잘할 수 있다. 내 정신은 그날 이후로 완전히 망가졌으니 미치광이는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판단할 몫이지 당신들이 판단할 부분은 아니다." 이러한 생각들을 이해해 줄 오직 한 명의 사람만 그의 곁에 있었다면 김재희가 무한교에 가입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라 사료된다. 사실 김재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주된 욕구는, 이러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정이지, 형의 부활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재희가 만일 진심으로 형의 부활을 원했더라면 어떻게든 무한교 상층부에 접근하고 테러에 적극적으로 동참했을 것이다. 김재희는 끝까지 무한교 측에 자신 또한 회귀자였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으며, 박무현의 탈출을 돕는 면모를 보였다. 김재희가 진심으로 기도회에 참여하여 과거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더라면, 언제든 압도적인 무한교 병력으로 엔지니어 가팀을 쓸어버리고 박무현을 제단에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무당과 종교집단에게서조차 환불을 받아내는 김재희의 집요한 -한번 목표한 것은 어떻게든 받아낸다- 모습을 고려할 때 그가 박무현을 '제단에 올리고 썰지' 않은 것은 본 목적이 그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요소는 김재희의 목표가 과거에만 있는 것이 아닌 현재에도 있음을 드러낸다. 즉 김재희는 현재에 분명히 애착과 뿌리를 두고 있으며, 과거의 상처에 고통받을지언정 그것에만 매몰된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오렌지 재희가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택한 방법은 바로 '이상적 타인에게서의 완벽한 이해'이다. 그 이상적 타인은 다름아닌 박무현이며,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에서 김재희의 발언은 이를 직접적으로 제시한다. 오렌지 재희에게 박무현은 자신이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완벽한 내면을 지닌 존재이자, 신적 대상에게 바치는 제물에 필적할 정도로 깨끗하고 순수한 존재⁵⁾이다. (그 완벽성을 인정하기에 오렌지 재희는 더이상 '대척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때 박무현의 선의와 인간성은 일종의 이데아적 개념이 되며, 누구도 완벽하게 따라할 수 없는 수준의 무언가가 된다. 이러한 김재희의 인식은, 박무현에게 감화되어 그의 의지를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신해량의 태도와 대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자신을 화재 후의 잿더미에 비유하는 인물인 김재희는 박무현의 의지에 경이와 아름다움을 느끼지만, 자신과는 평행선에 있다고 보며 그를 '이상화'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자신이 과거의 불안으로부터 완벽히 해방될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상처로부터 기인하는 자아상태를 타인에게 완벽하게 이해받고자 하는 심리는 매우 역설적이며 불안정하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타인은 초월적 존재, 전지전능한 신에 가까운 대상으로 그려지게 된다. 결론적으로 오렌지 재희에게 '구원자'라는 호칭은, 겉으로는 "나를 과거로 보내줘요"로 읽히나 실제로는 "나를 진정히 이해하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주세요"에 가까운 것이다. 물론 타인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불가능한 일이므로 해당 호칭은 김재희의 미성숙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관계⁶⁾는 결코 진정한 자아성립으로 이어질 수 없으며, 박무현이 끝내 그의 완벽한 이해자가 되기를 거부하면서 그는 파멸하고 만다.
    오렌지 재희는 마치 항구를 찾아 영원히 바다를 헤매는 망가진 배 같은 존재이다. 가장 이상적인 항구를 찾기 위해 주변의 등대를 거부하고 망망대해에서 외로움을 곰씹고 있을 뿐이기에, 설령 그 이상적 항구가 나타났다 하더라도, 배는 결코 닻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작가가 7회차의 마지막에서 그토록 강렬하고 잔혹한 방식으로 김재희를 죽이는 것을 선택한 것은, 성장을 거부하고 자신을 완벽히 이해하는 이상적 존재를 찾아 떠도는 것의 한계와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다.
 
2. 동백 재희의 심리 고찰
    이상화된 타인에게서 완벽한 이해를 갈구하던 오렌지 재희의 몸부림은 끝내 비극으로 끝났지만, < 어바등 >은 본질적으로 인간성, 성장, 믿음, 회복을 말하는 소설인 만큼 독자에게 김재희의 성장을 보여준다. 박무현의 전화를 듣고 사천계단을 올라온 8회차의 김재희, 곧 '동백 재희'가 바로 내적 성장을 의미하는 인물이다. 동백 재희는 '자신의 모든 희망과 의지는 그날 불타 사라졌다'며 자조하던 이전 회차 김재희의 비관적 태도에 정면으로 반하는 인물이다.
    동백 재희는 이전 회차의 김재희들에 비해 훨씬 부정적인 시작점에서 시작한다. 망가진 의족, 그를 비호해 줄 엔가팀 인원의 부재, 엔나팀의 폭행으로 입은 심각한 부상, 백애영의 외면 등⁷⁾에 더해, 작품 내내 김재희가 해저기지 탈출에 협조했던 거의 유일한 이유인 구원자 박무현의 부재를 고려할 때, 능동적 생존의지 자체가 없다시피 그려진 인물인 김재희의 자력 탈출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그럼에도 동백 재희는 전화 한 통의 희망만으로도 탈출 의지를 회복할 수 있을만큼 강인한 인물로 그려진다. 박무현은 그에게 '구원자'가 아닌 '친구'를 말한다. 자신은 김재희가 꿈꾸던 완벽한 이해자가 되어줄 수 없지만, 동등한 위치에서 위로를 건네는 동반자는 되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김재희 스스로의 힘으로 심해를 거슬러 와야만 한다고 말했다.⁸⁾ 동백 재희는 라피도포라를 지고 망가진 의족을 찬 채 사천계단을 하나하나 기어 올라온다. "세상 무엇보다 강인한, 살리고자, 또 살고자 하는 의지는 잠깐 잃어버렸다 할지라도 결코 영영 사리지지는 않는다." 동백 재희는 이 말의 상징 자체나 다름없다.
    동백 재희는 아마 회귀 후의 고통과 망가진 의족을 통해 '기적'이 발생하였음을 유추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비록 기억하지 못하지만 김재희를 알고 있는 '친구'가 다름아닌 무한교의 구원자라는 사실 또한 추론했을 것이다. 사실 김재희가 어떤 심리에서 사천계단을 올랐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무한교 인물들에게 박무현의 위치를 고발하거나, 제1해저기지 제단으로 향하는 대신, 고난을 직면하고 살아가기를, 또 어둠에서 벗어나 '친구'를 향해 올라가기를 스스로 선택했음은 분명하다. 즉 그는 지금의 상태에 안주하며 무조건적 이해와 구원을 바라는 존재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수평적 인간관계를 맺고자 하는 존재로 성장한 것이다.
 
    다만 동백 재희가 오렌지 재희의 사상과 완전히 단절된 인물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망가진 자아와 이상에 대한 갈망을 끌어안고 있다. 대한도에서 김재희는 몹시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드러낸다. 생존의지가 있는지 없는지 불확실한 모습⁹⁾, 허무주의와 적극적 태도 사이를 급격히 오가는 모습¹⁰⁾ 등은 그가 의지적으로 심해에서 탈출한 것과는 별개로 내면의 근원적 갈등이 해소되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특히 박무현이 '설령 영원히 정든 이들을 다시 볼 수 없더라도, 과거를 되돌리기 위해 지금을 버리는 것은 덧없으며 더욱 비극적인 일이 된다'고 분명히 말한 이후에 그의 고뇌는 더욱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 표출된다. 김재희는 입으로는 박무현의 심장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한편으론 라무나스에게서 그의 신변을 지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¹¹⁾ 이는 김재희가 루프를 겪고 난 후에도 단단한 박무현의 신념에 감명을 받았기에 그 신념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그가 신념을 꺾어 자신을 이해하고 구원해주기를 바라는 이중적 사고에서 비롯한다. 이후 완결까지도 김재희의 고뇌는 해답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박무현과의 관계를 회피하는 모습¹²⁾이 드러났다. 대신 작가는 외전에서 그 답과 함께, 김재희의 더 밝은 미래를 제시한다.
  
3. 실존주의 철학을 통한 성장
    김재희의 탈출 이후의 행보는 외전에서 퍽 자세히 드러난다. 모델이라는 적성을 살린 직업, 식물 기르기라는 건전한 취미, 화재를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던 붉은 염색모의 제거, 그리고 남에 의존해 살아가는 포도 덩굴이 아닌 스스로 곧게 자라나는 올리브 나무를 새긴 새 의족 등의 묘사¹³⁾는 탈출 후 김재희가 과거에서 벗어나고 완전히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염색이라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과거 상처의 극복과 새로운 내일로의 나아감을 드러내는 타 인물들과 달리, 회귀의 상흔인 백색 머리카락을 유지하는 김재희의 모습은 그의 내적 갈등의 흔적을 드러낸다. 또한 사람들의 관심으로 먹고사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타인과의 접촉이 최소화되는 주거를 원하는 것,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박무현과의 상호작용을 원함에도 오랜 기간 연락을 두절했던 것¹⁴⁾, 무한교의 몰락을 목격했음에도 과거에 대한 미련을 내보이는 것 등의 역설적인 행동은 그의 심리상태가 여전히 불안정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김소원의 조사를 통해 밝혀진 김재희의 생활상에서 그의 심리적 고뇌를 유추할 수 있다. 김재희가 구매한 철학책 4권(< 생의 비극적 의미 >, < 나의 생애와 사상 >, <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 < 죽음에 이르는 병 >)은 공통적으로 인간 존재 자체로부터 비롯하는 절망과 고통, 그리고 이로부터 우리가 찾아낼 수 있는 삶의 의미와 존재론적 성찰을 말하고 있다. 즉 김재희는 탈출 후에도 자신의 자아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으며, 실존주의적 탐구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자 함이 드러난다. 사실 이 책들은 단순히 김재희의 심리를 추정하는 수단 이상으로, 작가가 < 어바등 >의 세계관과 주제의식, 등장인물들의 사상을 숨겨둔 장치이기도 하다.
 
    실존주의 철학은 우리의 존재 자체에서 비롯하는 죽음, 허무, 공허를 직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인간은 이로 인해 필연적인 절망에 고통받는다. 하지만 이는 결코 허무주의나 비관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존재를 관통하는 깨달음을 통해 이 불안을 극복하고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실존주의 철학의 진정한 목표¹⁵⁾이다. 근원적 불안과 절망은 우리가 존재하는 한 우리를 계속해서 괴롭히는 부정적 대상이지만, 그 동시에 삶의 의미를 질문하게 하는 내면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즉 우리는 고통의 직면과 고찰을 통해 한층 성장하는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은 결국 고통과 불안과 함께 공존하면서 미래를 향해 걸어나가는 이야기가 된다. 해저기지를 탈출하면서 생존의지를 되찾은 동백 재희가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찾은 방법이 다름아닌 실존주의적 성찰이라는 점은, 김재희가 마치 아무 사건도 없었던 것처럼 어떠한 고통도 없이 과거의 일상을 향유하지는 못할 것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는 더이상 자신의 불안을 이상적 이해자에게 전가하지 않고, 스스로 이겨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외전은 김재희의 성장을 비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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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의 비극적 의미 >는 스페인 철학자 미겔 데 우나무노의 저서로, 그는 영생하고자 하는 감정적/신앙적 욕망과 불가피한 죽음을 인식하는 이성적 사고의 충돌이 절망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이 모순은 거대한 운명에서 비롯하기에, 인간의 힘으로 극복하는 것이 불가하며, 우리는 영원한 비극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러나 그는 비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허무주의가 방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을 감내하고 끊임없이 투쟁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인간 존재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는, 정신적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은 역설적으로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태도를 통해 스스로 얻어내는 것이라고 보았다.¹⁶⁾ 이러한 투쟁은 운명적 고통을 인간에게 부여하는 신앙적 존재(혹은 운명 자체)에 대한 반항으로 해석되지만, 그 존재와의 관계를 인정함으로써 비로소 자기구원이 가능해진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신해량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유사하다. 살아있는 한 투쟁을 멈추지 않으며¹⁷⁾ 자력구제를 신념으로 삼는 그는 항상 고통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라피스 라줄리 목걸이를 통해 상징된다.) 되돌릴 수 없으며 필연적인 죽음으로 인한 고통을 경험한 그는 우나무노 철학에 기반한 투쟁적 구원을 깨달음으로서 일상으로 돌아간다. 신해량은 작중 내내 김재희의 등대가 되어주고자 했다. 김재희가 완벽한 항구를 찾아 떠도는 동안, 그는 먼저 상처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김재희가 망가지지 않고 다시 살아가도록 돕고 싶어했다. 그러나 탈출 이전의 김재희는 신해량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를 통제심리로 생각해 왔다. 반면 탈출 후 김재희는 스스로의 존재 탐구와 증명의 과정에서 신해량의 방식을 따르고자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선을 다한 투쟁이 너무나 여러 번 실패로 이어지고,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목도한 김재희는 이러한 철학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의 여정은 다음 책에서 이어진다. < 나의 생애와 사상 >은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의 자서전으로, 박무현, 유금이, 김가영, 이지현 등의 인생관과 유사한 사상을 담고 있다. 동백 재희는 박무현을 구원자로 좇지 않고도 해저기지를 탈출했기에 김재희라는 인물의 숨겨진 희망과 의지를 드러내지만, 동시에 박무현의 실천을 생생히 목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오렌지 재희에 비해 그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가 1년 넘게 연락을 끊고 잠적한 것은 아마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박무현이 보였던 막대한 관심과 선의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 나의 생애와 사상 >은 동백 재희가 박무현을 이해하기 위해 택한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슈바이처는 인간 존재 의미를 생명 그 자체에서 찾는다. 이는 단순히 인간에만 해당되는 정의가 아니라, 생명 의지(will to live)가 있는 모든 존재에 해당하며, 곧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그는 모두 동등히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¹⁸⁾ 이는 2회차에서 이지현의 질문 "물고기는 고통을 느끼나요?"과 유금이의 답변¹⁹⁾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관점에서 존재의 증명과 실현은 '생명 경외'라는 윤리적 실천을 통해 이루어진다. 슈바이처에게 윤리는 단순한 규범이나 허상적 제시가 아닌, 지금 내쉬는 숨만큼 당연한, 삶 자체에서 비롯하는 대상인 것이다.
    하지만 한때 생명 의지 자체를 잃어버렸던 김재희는 < 나의 생애와 사상 >에도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밀려오는 죽음의 파도를 마주하고도 도망치지 않고 가라앉았던 것처럼²⁰⁾, 생명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생존의지마저 상실했던 김재희는 슈바이처 철학에서 자신이 박무현에게 선의와 존중을 받을 이유를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 의지가 없는 대상에게마저 선의를 실천하고자 하는 이는 대체 어떤 이인가?
  
    이는 종교적 사고로 이어진다. <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와 < 죽음에 이르는 병 >은 모두 실존주의 철학에 기반하지만, 신앙적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진정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무한교가 주장하는 일방적 죄사함이나 과거 회귀를 이용한 회피가 아니라, 운명이 부여하는 고통의 성찰을 통해 현재에 충실하고자 함을 의미한다. 그 최종적인 방법을 신적 존재에게서 찾을 뿐이다.
 
    <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의 저자 카를 힐티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존재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고통받는 존재라고 보았다. 이때 불안은 부정적인 대상이 아닌 내적 성찰의 계기로 작용하며, 우리는 존재의 궁극적 증거를 찾아 헤메는 것이다. 힐티는 신에 대한 의존과 신뢰 속에서만 인간이 온전히 스스로를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²¹⁾ 우리가 스스로의 근원적 불안에 대한 완전한 해답이 천상계에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현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윤리적 실천은 곧 신앙의 구체화로, 존재론적 성찰의 과정에 포함된다.
    그러나 힐티가 본 신은 인간을 완전히 이해하며 무엇이든 포용하는 안식처이자 절대적인 이상적 존재에 해당한다. 이러한 이상체에게 의존함으로써 불안을 해소하고 안식에 다다를 수 있다는 생각은 오렌지 재희의 행보와 일치한다. 힐티 철학을 고려할 때 오렌지 재희는 박무현에게 단순히 이해와 인정만을 바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근거 자체를 의탁하고 있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박무현은 완벽한 절대자가 아닌 이상화된 타인에 불과하며, 결코 그의 존재적 의문에 완벽한 해답을 쥐여줄 수 없다. 결국 오렌지 재희는 불가능한 갈망을 품은 채, 타인 없이는 스스로의 존재조차 성립할 수 없는 일종의 수동적인 정물과 같은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또 오렌지 재희는 박무현의 실천적 태도에 감명받아 그에 어느정도 협조하지만, 끝내 그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다. 힐티의 관점에서 윤리적 실천은 신앙의 실천과 동일시된다. 따라서 도덕은 목적적 수행이 아니라, 신앙의 행동화라는 결과에 지나지 않게 되며, 우리는 선을 기계적으로 수행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를 본질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오렌지 재희가 엘리베이터에서 신해량을 버리고 가자고 제안하는 모습²²⁾이나, 이후 아펩 다이빙에서 리코의 다리를 찔러버리는 행동²³⁾ 등에서 그가 박무현의 사상을 이해하는 것에 실패하였음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처럼 이상화된 타인이나 절대자 등에게 수동적으로 의존하여 근원적 불안을 해소하고자 하는 태도는 상당한 단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미 이전 회차에서 오렌지 재희의 죽음을 통해 박무현의 사상과 다름이 증명되었다. 동백 재희는 비록 이 기억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구원자'가 아닌 '친구'를 주장하며 그를 심해 밖으로 불러낸 목소리를 고려할 때 힐티 철학이 박무현과의 관계에 대한 정답이 아니라고 보았을 것이다.
 
    < 죽음에 이르는 병 >의 저자 키르케고르는 힐티와 유사하게 자아가 신과의 관계를 통해 궁극적으로 성립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키르케고르 철학에서 사용되는 절망의 개념은 힐티의 주장에 비해 매우 특징적이며, 김재희가 드러내는 불안을 잘 설명한다. 인간은 계속해서 절망을 마주하는 존재이다. 이때 절망은 단순 두려움이 아니라 존재와 자아의 문제에서 비롯하는 근원적 대상이며, 무의식적 절망, 의식적 절망, 반항적 절망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이는 각각 '자신을 의식하지 못하는 절망',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는 절망', '타자를 거부하는 절망'을 의미한다. 무의식적 절망은 자아를 질문하지 않고,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살아가는 인식 결여의 상태이다. 의식적 절망은 현실적 조건이나 추상적 상상 둘 중 하나에만 몰입하여 나머지를 잃어버릴 때 발생한다. 인간은 유한성이나 무한성 하나만으로 살아갈 수 없으며, 이는 죽음(허무주의적 태도)과 영생(공상적 태도) 사이에서 헤메는 것과 유사하다. 마지막으로 반항적 절망은 타자와의 관계를 거부하고,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스스로 정의하려는 태도에서 온다. 이는 결코 완성될 수 없으며, 끝내 치명적인 자기파괴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죽음에 이르는 병'인 것이다.
    김재희는 화재 이후 계속 생존의지가 결여된 허무주의와 과거로 돌아가기를 꿈꾸는 공상 사이를 오가며 살아왔다. 그 누구도 그의 경험을 이해하고 공감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오랜 시도 끝에 마음의 문을 걸어잠그고, 자신의 과거를 타인에게 감추었다. 김재희는 박무현이 구원자인 것을 안 후에도 자신의 경험을 솔직히 밝히지 않았다. 이는 스스로 정의한 복잡하고 망가진 자신을 인간 박무현에게 드러내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자, 동시에 그에게 이상적 이해자로서의 신앙적 역할을 기대하는 역설적인 태도로, 자아의 분열과 파괴, 즉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키르케고르는 완전한 자아의 성립이 타자(궁극적으로는 신)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자신을 신 앞에 정직하게 드러내고,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을 받아들임으로써 진정한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²⁴⁾ 이때 인간은 신이 자신의 이성이나 이해의 영역에서 벗어난, 초월적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신은 단순히 인간의 이상화된 자아가 아니라, 닮을 수도, 영원히 닿을 수도 없는, 인간과 완전히 다른 대상인 것이다. 즉 신은 절대적 타자(absolute other)로 작용한다. 따라서 신과 관계를 맺기 위해 인간은 기존의 관점에만 매몰된 사고를 버리는, 신앙적 도약(leap of faith)을 해야만 한다. 신은 우리가 끝내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향해야 하는 존재이다. 도약을 통해 우리는 능동적으로 신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걸고 뛰어드는 행위만이 진정으로 존재의 절망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이다.²⁵⁾
 
    김재희가 박무현을 찾아온 것은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고 나서였을 것이다. 박무현은 김재희에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자 일종의 신적 대상이다. 하지만 오렌지 재희의 신앙과 동백 재희의 신앙은 결이 다르다. 이상화된 타인에게 신적 역할을 강요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김재희가 찾아낸 해답은,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도약을 통해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김재희가 내린 결론에 종교적 측면이 있다고 해서 그가 퇴보했다거나, 일상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신해량이 박무현의 노력이 만들어낸 기적같은 선의의 실현을 목도함으로써 그를 이해하고 성장했다면, 김재희는 박무현의 초월성을 인정하고 도약의 방식으로 그와 능동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성장한 것이다. 물론 박무현은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며 자신을 '커피 한 잔 타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정도의 친구로 생각하기 때문에 김재희의 신앙적 관점은 이와 부딪힐 수 있다. 김재희의 결론이 이대로 유지될지, 변화할지는 열린 결말로 남았지만, 김재희의 고찰은 자아 성립과 윤리 실천이라는 질문에 실존주의 철학으로 답변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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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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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희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결핍을 해소하고자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인간은 서로 너무나 다르고, 그렇기에 일부 사상을 이해하고 그에 공감할 수는 있어도, 그 사람 자체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박무현은 김재희의 상처를 결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고, 김재희 또한 박무현의 선의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박무현의 '내가 손해보더라도 선을 실천하고자 한다'와 같은 가치관은 더욱 타인에게 이해되기 어렵다. 이러한 타인을 목도했을 때, 그를 함부로 이상화하고 추앙하는 태도는 어쩌면 그 선한 의지와 빛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변명이자 합리화일지도 모른다. 이때, 그런 쉬운 길을 버리고, 서로의 타자성을 인정한 상태에서 관계 맺고자 하는 시도는 상대에 대한 가장 투명한 응시가 된다. 그리고 이는 무의미한 외침과 갈구가 아닌, 진정한 삶의 추구로 이어질 수 있다.²⁶⁾
    사실 신해량도 박무현의 행보와 기적같은 성과를 직접 마주하지 않았더라면, 끝내 그의 이해자로 남지 못했을 것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점에서 김재희의 결말은, 선의를 실천하고자 마음먹었으나 박무현이 될 자신이 없는 독자들에게 보내는 추신이 된다. < 어바등 >의 긴 여정을 함께한 독자들은 둘로 나뉜다. 박무현의 행동과 내면 묘사를 내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그의 의지를 따를 수 있는 사람들과, 박무현의 실천에 경이를 느끼고 그리 하기를 원하나, 자신의 본질이 그와 다르다고 생각하며 주저하는 사람들이다. 작가는 후자의 사람들에게,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는 위로와, 그럼에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의를 실천할 수 있다는 길을 제시한 것이다.

1) 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전자책], 178화, 184화
2) 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전자책], 283화
3) 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전자책], 302화
4) 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전자책], 407화
5) 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전자책], 301화
6) 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전자책], 246화
7) 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전자책], 310화
8) 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전자책], 328화
9) 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전자책], 368화
10) 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전자책], 374화
11) 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전자책],  377화
12) 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전자책], 388화
13) 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전자책], 395화
14) 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전자책], 394화
15) Aho, Kevin, "Existentialism",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Spring 2025 Edition), Edward N. Zalta & Uri Nodelman.
16) Unamuno Y Jugo, Miguel de. "Encyclopedia of Philosophy". Encyclopedia.com. (October 6, 2025).
17) 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전자책], 161화
18) 황재범. 슈바이처의 생명 경외 개념의 이해와 비판. 한국기독교신학논총, 23(1), 215-243. (2002)
19) 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전자책], 76화
20) 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전자책], 214화
21) Hilty, K. Happiness: Essays on the meaning of life. Macmillan. (1903).
22) 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전자책], 268화
23) 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전자책], 295화
24) 이명곤. 키르케고르의 실존적 철학함의 방법론으로서의 ‘믿음의 역설’. 인간연구. (27), 61-94. (2014).
25) Söderquist, K. B. Kierkegaard and Existentialism: From Anxiety to Autonomy. A companion to Kierkegaard, 81-95. (2015).
26) 김태국. 키르케고르의 ‘영원한 행복’과 ‘절망’ -자기실현적 행복과 그 계기-. 철학논집, 52, 65-94. (2018).